다이사트의 공포, 그들이 나를 보고 있어, 에쿠우스가. 다이사트는 소년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서로 친근하게 어깨를 두드리며 "네가 불쌍하니까" "당신도 그렇잖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였건만. 다이사트는 소년을 한마디로 정의해버린다. 멍든 사춘기. 다이사트를 진정으로 괴롭히는 것은 말들이다. 설명해낼 수 없는 말들, 에쿠우스, 어느새 다이사트를 사로잡은 에쿠우스. 다이사트는 자신이 말대가리를 쓴 양 괴로워한다. 그들이 나를 보고 있어, 그들이.
나는 알런이 자라 다이사트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에쿠우스의 눈을 찌르고, 보지마, 보지마, 나를 보지마, 그리고 빈 자리를 아무 것으로도 채우지 못한 채 자라 다이사트가 되었다고. 다이사트의 미적지근한 생, 그것이 알런이 앞으로 견뎌야 하는 생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던거다. 다이사트는... 다이사트는 알런의 에쿠우스를 통해 진정한 원시를 발견했다. 몰랐다면 그냥 그렇게 살 수도 있었을, 그러나 알고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원시를. 알런이 에쿠우스를 자신에게서 몰아내기 위해 창자를 물어뜯겨야 하듯, 다이사트 역시 자신의 내장을 내주어가며 싸워야겠지. 그가 썼던 가면은 어느새 말대가리로 바뀌고, 그는... 그는, 앞으로의 생 내내 에쿠우스의 시선을 견디어내야 한다. 불쌍한 닥터 다이사트.
학부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왜냐는 질문을 받고 웅얼거렸지. 다른 선택을 하려고. 나는 그냥 학부 졸업하고 취직할거에요, 라고 말하려고 했다. 한데 그 때 무척 졸렸고, 좀 정신이 없었다- 내 손 끝에서 나간 말은 나 스스로도 상상한 적 없던 말이었다. 내 에쿠우스를 다시 찾으려고요.
나다는 이 연극은, 자신의 에쿠우스의 눈을 찔러본 20대 중반 이후에 보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 그렇지. 나의 에쿠우스,내가 그렇게나 강렬하게 열망했던, 내 인생을 전부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사랑스러운 에쿠우스. 알런이 에쿠우스를 타며 느낀 열락을 나도 맛보았다. 나의 에쿠우스와 함께 할 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는 완전한 존재였고, 나는... 나는, 그래 그 때 나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에쿠우스의 눈조차 찔러보지 못한 채 도망쳤다. 더이상은 안된다고, 안된다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뒷걸음질쳤다. 내 에쿠우스에게서.
왜 나는 나의 창자를 내주지 않았을까.
왜 나는 내 안에 빈 자리를 만드는 일을 감내하지 못했을까. 결국은 이렇게 비어버릴 것을.
웃음이 나온다. 자기만의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다고 도망친 주제에 이런 글이나 쓰는 나. 도망자에게 변명 따위 허락되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그들이 보고 있지. 그래,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들을, 그들을 아름답게 추억하지는 못한다. 버리는 순간엔 사랑인 줄 몰랐더니, 버리고 나니 나를 버린 거였더라, 라는 이런 통속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아름답게 추억한단 말인가. 어제 알런이 에쿠우스의 눈을 찌르려고 할 때, 정말 비명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안돼, 안돼. 찌르면 안돼. 그를 버리는 순간 너는 너 자신을 모두 버리게 되는거야. 안돼. 하지만 알런은 에쿠우스의 눈을 찌른다. 그리고 나는 그것조차 부러워한다. 나는 내 에쿠우스의 눈조차 찔러보지 못했으니.
아아, 다이사트는 이제 어떻게 될까. 자신이 바라보던 원시가 진정한 원시가 아니었음을 발견해버린 다이사트는. 다이사트는 에쿠우스 앞에, 에쿠우스에게 사로잡힌 알런 앞에 경건하게 꿇어앉는다. 저 먼 동굴 속에서 에쿠우스는 외치지. 네가 나를 설명할 수 있단 말이야? 그 동굴은 다이사트의 내부에 있다. 다이사트 앞에 펼쳐진 심연은, 그래, 그 심연이야말로 평생 사라지지 않을테지. 그간 자신이 난도질해서 "정상"으로 만들어 사회로 돌려보낸 아이들이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 다이사트는붕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둠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이사트의 에쿠우스는 다이사트를 잡아줄까.
인간에게서 신앙을 빼앗는 것만큼 나쁜 일이 또 있을까...라면.
인간에게 신앙을 주는 것은 또 어떤 일인걸까. 그리고 그 신앙을 잃어버린다면...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다이사트가 발견한 어둠이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아서.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인간은 왜 이리 약한걸까.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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